대구에서 북쪽으로 약 24km, 심심산골에 있는 한티는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이자 그들이 처형을 당한 곳이며 또 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순교성지입니다. 한티에 언제부터 신자들이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인근 신나무골과 비슷한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후에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들의 가족들이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산 것으로 추정됩니다. 1860년 경신박해로 큰 아픔을 겪었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 안에서 오히려 더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박해를 넘긴 한티 마을은 1866년 시작하여 3년 가까이 이어진 병인박해의 여파로 인해 최후를 맞게 됩니다. 1868년 한티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배교하지 않는 교우들을 현장에서 처형하고 마을은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박해 소식을 들은 인근 교우들이 왔을 때는 이미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이 산야 곳곳에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해 옮길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순교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했고, 지금까지 확인된 순교자의 묘는 모두 37기로 그중에서 조 가롤로 가족 등 4기만 신원이 알려져 있습니다.
박해의 먹구름이 지나간 뒤 조영학 토마스(조 가롤로의 아들)와 몇몇 교우들은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순교자들의 영성을 이어가기 위해 공소 재건에 앞장섰습니다. 재건된 공소는 1900년 초 신자 수 80여 명 이상의 전성기를 거쳐 성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기까지 공소의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순교성지 개발을 위한 부지 매입과 조사를 시작한 대구대교구는 무명 순교자들의 묘를 확인하고, 1991년 피정의 집, 1995년 성지 관리 사무소, 1998년 옛 공소 복원, 2000년 대구 대신학교 영성관, 2004년 순례자 성당 축복식, 2016년 한티 가는 길 개통식을 가졌습니다. 현재 국내외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 성지에서 많은 영적인 힘을 받아 가고 있습니다. 또한 박해시대 한티의 교우들이 신나무골을 오가며 걸었던 한티가는 길을 찾는 도보순례자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막골 & 홍주성지 (2020.11.28) (0) | 2020.11.30 |
---|---|
2018년 이전 다녀온 가톨릭성지 (0) | 2020.11.25 |
성지순례(남한산성,구산,양근성지)-2020.10.11 (0) | 2020.10.12 |
부엉골 성지순례 (2020.09.29)실패하다 (0) | 2020.10.05 |
용소막성당/묘재 그리고 배론성지(2020.05.23) (0) | 2020.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