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성지 , 명례성지 & 신석복(마르코)의 묘(2021.02.28)
경주 진목정에는 허인백 야고보,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가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범굴과 울산 장대에서 순교한 후 시신이 안장되었던 의묘가 있습니다. 이양등은 울산 죽령 교우촌의 회장으로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허인백과 김종륜을 만나 서로 권면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이곳은 비교적 안전했지만 2년 뒤인 1868년 포졸들이 교우촌에 들이닥쳐 경주 진영으로 끌려간 세 순교자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은 후 사형선고를 받고 울산 장대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이들이 순교한 후 허인백의 부인 박조예는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대 인근의 강둑 아래에 안장했고, 박해가 끝난 후인 1907년 박조예의 확인을 거쳐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굴되어 유족들에 의해 경주시 산내면 진목정 뒷산인 도매산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후 1932년 5월 말 순교자들의 유해는 월배동 감천리에 있는 교회 묘지로 옮겨졌고, 1962년 10월 교회 묘지 산상에 있는 성모상 앞의 석함에 옮겨 안치되었다가, 1973년 10월 대구시 동구 신천 3동에 있는 복자 성당 구내로 옮겨 안장되었습니다. 세 순교자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마산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인 명례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입니다. 명례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가 출생한 곳이며, 오래된 교우촌으로 1897년 영남 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의 첫 번째 본당이 설립된 곳입니다. 또한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방인사제인 강성삼 신부가 초대주임으로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입니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는 1828년 밀양의 명례에서 태어나 누룩과 소금행상을 하며 살았습니다. 낙동강을 건너는 명례 나루터에는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정착했고, 그들로부터 신앙을 전해 받은 듯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장사하러 갔다 오던 중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밀양으로 압송되었고, 대구로 끌려가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형을 받은 뒤 3월 31일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그 후 순교자의 아들이 대구로 가서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부친의 유해를 찾아왔지만 지방 유지들과 신씨 문중의 반대로 고향 땅에 안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 노루목에 안장했고, 1975년 12월 진영 본당 신자들에 의해 본당 공원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