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성지순례

성지순례(남한산성,구산,양근성지)-2020.10.11

남윤우 안드레아 2020. 10. 12. 10:10

+ 그동안 벼르던 성지순례를 다녀오다

내 반쪽 가밀라를 어르고 달래 토요특전 미사를 봉헌한 다음날(10.11)

남한산성,구산성지,양근성지를 돌아 보다 ^^^ 은총이 가득한 하루 였다

 

1) 남한산성 성지

남한산성 순교성지는 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한덕운, 김덕심,

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제 순교자는 2~3백 명으로 추산)이 순교한 곳입니다.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중건한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간에 걸쳐 축성되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으로 들어서는 길은 두 군데로 서쪽으로는 성남 방면, 동쪽으로는 광주 방면으로 연결됩니다.

치명터는 동문에 자리하고 있는데, 동문을 통해 신앙 선조들은 오랏줄에 묶여서 살아서 들어왔지만 혹독한 고문 끝에

결국은 시체가 되어 성 밖으로 던져졌습니다. 더욱이 살아서 동문을 들어온 이들이 죽어서는 물이 빠지도록 성 밑에

파놓은 수구문을 통해 내팽개쳐졌습니다. 그래서 수구문(水口門)은 시구문(屍口門)이 되었습니다. 남한산성 로터리에는 천주교인들을 수감했던 옥터와 처형터가 있습니다.

수원교구는 1998년 남한산성을 성지로 선포하고 공영주차장 인근 작은 개천 옆에 마련한 부지에 순교자현양비와

한옥 양식의 성당을 건립하였고, 성당 뒤편 산에는 야외미사터와 십자가의 길 14처를 조성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순교의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기존의 협소한 성당을 대신할 한옥 형태의 새 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2) 구산성지

구산 성지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이자 박해시대에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교우촌인 구산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산에서 태어난 김성우 성인은 36세에 두 동생과 함께 세례를 받고 친척과 이웃들을 입교시켜 이 지역을 교우촌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동안 유방제 신부를 모시고 회장직을 수행하며 온 마을에 복음을 전한 성인은 1836년 모방 신부가 입국하자 자기 집에 모시기도 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됐다가 간신히 풀려났고, 1840년 다시

가족들과 함께 붙잡혀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었습니다. 포도청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갖은 고문을 당한 성인은 배교를 강요하는 재판관에게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라며 결코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순교 후 그의 유해는 아들 김성희 암브로시오 등에 의해 수습되어 고향에 안장되었습니다. 1927년 5월 30일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와 명동 성당을 거쳐 절두산 순교자 기념성당 지하의 유해안치실에 모셔졌습니다. 현재 구산 성지 순교자 묘역에는 김성우 성인과 가족 그리고 구산 출신 순교자 등 9위의 무덤이 진묘와 의묘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김성우 안토니오는 1984년 5월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3) 양근성지

양근(楊根)이란 ‘버드나무 뿌리’란 뜻으로 남한강 변에 폭우와 홍수로부터 제방의 붕괴를 막고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버드나무가 많았던 데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양근 성지는 신유박해 이전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인

권철신과 권일신이 태어난 곳입니다.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서울 수표교 근처

이벽의 집에서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후 이승훈은 양근으로 내려와 권철신과 훗날

충청도와 전라도의 사도가 된 이존창과 유항검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조과, 만과, 성로신공 기도 등을 바치며 천주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가성직제도 하에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양근 성지는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 동정부부가 태어나고 신앙을 증거한 곳으로, 이 동정부부는 한국 교회의

성직자 영입 운동에 적극 참여하다가 잡혀서 순교하였습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기 위해 두 번이나

북경에 밀사로 다녀온 윤유일의 동생 윤유오, 윤점혜, 권상문이 참수형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그 외에도

조용삼, 홍익만이 순교한 곳으로 이들은 모두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천주교인들이 양근천이 한강과 만나는 일명 오밋다리 부근 백사장에서

목이 잘리고 시신이 내버려졌던 곳입니다.